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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oo Yong Lee

사사기 강해 Ⅶ. 왕 아비멜렉 삿8:29~35, 9:1~7. 04.26.2020

성경에 형제를 집단 살인한 사건이 나온다. 그것은 기드온의 서자 아비멜렉이 정실의 아들들인 70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인 사건이다. 기드온이 죽자 아비멜렉은 자신의 외가 친척이 있는 세겜에 찾아가 선동을 한다. 기드온의 아들 70명의 지배를 받는 것 보다 혈육인 자신에게 지배를 받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말을 하여 그들로부터 선동 자금 은화 70을 받는다. 그 돈으로 동네 건달들을 고용하여 기드온의 아들들 70명을 죽이고 아비멜렉은 이스라엘의 왕이 된다.

아비멜렉은 왕이 되었으나 그의 마지막은 좋지 않다. 그를 왕으로 추대했던 세겜 사람들하고 결국에는 반목이 생긴다. 그들과 서로 전쟁을 벌이다가 세겜을 불태우고, 더베스로 도망간 남은 자들을 추격하여 그들이 숨은 망대에 불을 지피려고 시도한다. 그 때 망대 위에 있던 한 여인이 던진 맷돌 위짝에 맞아 죽는다.

이 이야기 속에 숨겨진 영적인 의미는 무엇인지 기드온의 말년의 이야기부터 살펴본다.

1. 기드온의 말년

미디안 전쟁을 300명의 용사로 이긴 기드온은 백성들의 ‘왕이 되어 달라’는 요청을 완강히 거부한다. 이 전쟁의 승리의 요인은 하나님에게 있음을 잘 알기에 하나님 만이 홀로 영광을 받으라는 의미로 ‘에봇’을 만든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그 에봇을 우상화 한다. 그런데, 그 에봇이 결국에는 기드온에게 올무가 된다(27절)

그는 이 후에 영적으로 타락한 삶을 살게 된다. 그것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는 율법을 어기고(신17:17) 많은 아내와 첩을 두었다. 세겜 출신의 첩을 두었다는 것은 이방 여인과 비합법적 관계였다는 의미이다. 그 첩에게서 낳은 자녀가 아비멜렉이다.

왜 아비멜렉은 세겜 사람을 첩으로 두었는가? 그것은 다분히 기드온의 정치적 행위이다. 므낫세 지파 출신인 기드온이 형제 지파인 에브라임과 연합을 할 경우에 이스라엘 영토의 반을 차지할 수 있다. 그는 이를 통해 자신의 세력을 공공히 할 수 있다. 그런데 첩의 고향이 세겜 즉, 에브라임 지파의 도시였다. 그 이유로 세겜 출신의 첩을 얻은 것이다.

이 모든 얘기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드온은 다른 그 어느 시대의 사사 보다 권력을 누리는 왕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뜻이며, 더 이상 하나님의 율법이나 가르침은 필요 하지 않는 인물로 변했다는 것이다. 아비멜렉의 이름도 ‘나의 아버지는 왕이시다’라는 뜻이다. 기드온은 처음 시작은 왕이 되지 않겠다고 하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자녀의 이름을 ‘아비멜렉’으로 지을 만큼 스스로 왕이 되려 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하나님 앞에서 큰 복을 누리고 있을 때에 조심하자. 이 시절이 오래 가면 복이 복인 줄 모르고, 나도 모르게 영적으로 가장 어두워 질 수 있다는 교훈을 이 기드온의 생애에서 배워야 한다.

2. 시대적 배경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드온이 죽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방신인 바알과 바알브릿을 섬긴다(33,34). 사사기에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항상 사사가 죽으면 바로 우상숭배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요즘을 사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씀이다.

기독교 신앙은 영적인 성숙을 이루기 위해서 반드시 ‘지도자’가 필요하다. ‘지도자의 리더십’을 따르지 않는자는 결코 영적으로 성숙하다고 할 수 없으며 온전한 신앙의 길로 갈 수 없다. 그러나, 지도자가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을 의지하고 사람 중심의 신앙이 되어 버리면 영락없이, 기드온이 죽자마자 이방신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될 확률이 아주 높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우리 한몸교회 사역의 방향은 평신도 지도자를 세워서 그 분들을 중심으로 사역하는 교회로 갈 것이다. 교회는 목회자 한 사람에게만 집중될 때에 그 지도자뿐만 아니라 그를 따르는 하나님의 백성도 잘못될 확률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평신도 중심의 소그룹 모임이 이루어질 때에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그것은 간증이다. 간증은 실제적으로 신앙 성숙의 과정과 단계 속에서 참으로 유익이 될 때가 많다. 하지만, 간증의 내용이 초자연적인 일에만 집중이 되면 안 된다. 그 모든 내용들이 반드시 이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깨달았다’와 ‘나는 이로 인해 이렇게 살기로 노력할 것이다’는 데까지 가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만나는 감격도 늘 이벤트 중심이 되어 내 삶 속에 신자로써의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 기적으로 승리한 기드온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3. 아비멜렉의 몰락

아비멜렉이 세겜에서 왕이 된 방법은 혈연이라는 것으로 묶어서 ‘갈라치기’를 한 것이었다. 그런데 아비멜렉은 가알이라는 사람에게 똑같이 ‘혈연 갈라치기’라는 방법으로 반목을 산다. 아비멜렉은 가알의 반란을 막기 위해 세겜 도시를 박살을 내어 거의 멸절시킨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는 분명 승리했다. 그러나, 그 승리로 말미암아 그는 자기 동족, 친척, 형제와 같은 공동체 사람들을 다 잃어 버렸다.

이것이 자기 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맞이하는 참람한 결과이다. 우리는 모두다 나름의 계획이 있다. 그리고 이 계획대로만 되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이 배제된 인간의 계획에는 ‘재난의 영(악한 영)’을 보내어 그 인간의 계획을 깨부수신다(9:23). 인간은 자신의 세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비멜렉의 마지막 역시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한 여인이 던진 맷돌 위짝에 맞아 죽는다.

이 아비멜렉의 아둥 바둥 살려고 하는 모습, 자기의 뜻을 포기하지 못하고 사는 그 모습 속에 투영되어 보이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인간은 우리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 구원을 이루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것이 옳지 않음을 보이시려고 예수님을 보내셨다. 그런데 인간은 그 하나님의 계획인 예수 마저도 다 부숴버렸다. 그것이 인간의 계획이다.

우리는 그렇게 깨부수면 자기가 망하는 길인지도 모르고 다 부숴버리는 아비멜렉과 똑같다. 지도자의 실수로 이스라엘은 망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집념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는 것으로 우리의 계획과 뜻이 아닌 당신의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해 내셨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다. 우리의 인생의 곤고할 때 마다 ‘재난의 영’을 통해서라도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 환란 속에서 나를 더욱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맛보게 될 것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나를 영적으로 타락케 하는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그것을 이길 수 있는가?

3. 기드온의 이야기 속에서 나와 가장 닮은 점은 무엇인가? 두려운가? 아니면 기대가 있는가?

4. 우리 교회가 평신도 중심의 교회라는 것에 대한 각자의 생각은 어떠한가?

5. 기드온과 아비멜렉의 몰락을 통해서 투영해 보이는 내 모습은 무엇인가?

6. 재난의 영을 주관하시는 분도 하나님이라는 생각을 하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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