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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강해 Ⅷ. 사사 입다. 삿11:1~10절(05.03.2020)

입다는 길르앗 지역에서 기생의 아들(서자)로 태어났다. 본처의 형제에게 따돌림을 당한 입다는 ‘돕’이라는 지역에서 건달들의 우두머리가 된다. 그 후 이스라엘이 암몬에게 18년째 괴롭힘을 당하자 이를 견디지 못한 이스라엘 장로들이 입다를 찾아가 이스라엘의 머리와 장관이 되어 달라고 부탁한다. 이를 수락한 입다가 암몬과의 전쟁에 참여하여 승리를 거둔 이야기가 입다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 가운데 나타난 입다가 신앙의 사람이었다고 보기에 아주 난해한 부분 두 가지를 정리해 본다.

1. 딸을 번제로 바친 일

입다의 이야기 속에는 유독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장로들이 입다를 설득하는 과정, 입다가 장관이 된 후에 미스바에서 하나님께 아뢴 부분, 입다가 암몬 왕을 설득하는 과정 속에서도 입다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간다. 이런 부분을 보면 그는 분명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신자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입다가 암몬과의 전쟁을 앞두고 하나님께 서원한 내용이다. 그것은 그 전쟁에서 이기면 가장 먼저 나를 영접하는 사람을 번제물로 드리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뜻밖에 영접자가 무남동녀 외동딸이 나오고 결국에는 그녀를 번제물로 드렸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부분으로 인해서 오랫동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만일 하나님께서 실수로 한 모든 서원마저도 이렇게 자녀를 바쳐야 하는 것까지 요구하면 하나님이 정말 무서운 하나님이 아닌가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원어로 이 부분을 연구하다가 입다의 서원 중에 뜻밖의 사실을 몇 가지 알게 되었다.

1) ‘그’를 바친다

한국말 성경엔느 ‘그를 번제물로 드린다’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원어에는 꼭 그것이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히브리어 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영어 성경도 사람을 지칭하는 whoever(누구든지)가 아니라 whatever(무엇이든지)라고 번역했다. 즉, 단순 3인칭 단수이다.

2) 죽음

한국말 번역인 개역 개정에는 37절, 38절에 입다의 딸이 본인의 ‘죽음’을 애곡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히브리말에도, 영어 성경에도 그녀가 죽는다는 말이 없다. 이 말은 곧 입다의 딸이 제물로 바쳐져 죽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3) 접속사 וְ (베. 히브리어)

31절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 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에서 ‘이니’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접속사 וְ (베)이다. 이 단어는 ‘그리고’로 번역이 되었다. 하지만, 이 단어는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또는, 혹은’으로 번역된 단어이다. 그러니까 이 단어를 ‘또는’으로 번역하면, 이 구절을 앞서 ‘무엇이든지’와 합하여 이렇게 번역할 수 있다.

무엇이든지(사람이든, 동물이든) 나를 영접하는 그것을 여호와께 드리거나 혹은, 내가 그것을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이 말은 곧, 사람이면 하나님께 드릴 것이다. 혹은, 동물이면 번제로 바치겠다는 것이다. 동물을 번제로 바친다는 것은 의미가 명확하다. 그렇다면 사람을 여호와께 드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레위기에 보면 사람을 하나님께 드리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것은 돈으로 대신 드리는 ‘속전’과 사무엘처럼 ‘성전 봉사자’로 드리는 방법이 있다.

여성을 ‘성전 봉사자’로 드린 경우에는 그녀는 결혼을 하지 못한다. 성막에서 허드렛 일을 하며 살아가며 처녀성을 유지해야 한다. 이런 문화를 알고 나면 왜 11장 뒷 부분에 입다의 딸이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한다. 처녀성을 슬퍼했다. 애통했다’라는 말이 다 이해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입다가 딸을 성막 봉사자로 서원하여 이행한 것에는 문제가 없는가. 과연 그가 이 부분을 사랑하는 딸이냐, 하나님이냐를 고민하다가 하나님 앞에 보인 믿음의 결연으로 봐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에 대한 얘기를 입에 달고 살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실제는 하나님이 누구인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고 살았던 사람이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는 전쟁을 앞두고 하나님의 의도와 뜻을 물어 본 적이 없다. 그냥 자신이 원하는 것을 놓고 하나님께 일방적으로 서원을 했다. 자기가 세운 원칙, 믿음의 방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고수한 사람이다. 현대의 많은 크리스찬들이 이와 같다. 하나님이 내 삶 속에 무엇을 원하는가 하는 부분을 성경을 통하여 조명하지 않는다. 내 열심, 내 의지, 내 희생을 강조하며 결국에는 자기만의 신앙의 형태를 만들어 내고 고집한다. 서원은 내가 갖고 싶은 것을 두고 하나님과 흥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내게 하신 일이 너무나 감사해서 조건 없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 그것이 서원이다.

그가 이런 조건의 기도를 하나님 앞에 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올려 드린 것은 주변국인 암몬의 영향이다. 입다는 그들이 믿는 신의 제사 방법으로 하나님께 제사하려고 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행여 내가 이전에 알고 있던 다른 종교의 그 어떤 신앙의 형태와 모습으로 기독교를 덮어 씌워서는 안 된다. 성경에 대한 진리,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통하여 확인하여 접목할 때만이 바른 신앙으로 자랄 수 있다.

2. 하나님의 영의 임재

입다의 서원 기도는 온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면 여기에 또 다른 딜레마가 발생한다. 그것은 입다가 딸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기도를 하기 바로 전에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했다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이 그를 온전하지 못한 신앙으로 인도했다는 것이 되는데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그것은 딸이 하나님께 바쳐진 것 자체가 주는 메시지를 예수님의 그림자로 해석하면 해결이 된다. 오늘 본문에 보면, 유독 입다의 딸이 하나님께 드려지기 전에 본인이 처녀임을 강조한다. 당시 이스라엘이 가진 문화로 해석할 때에 여자가 결혼 전에 ‘처녀’라는 것이 갖는 상징성은 죄를 짓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렇다. 입다는 온전하지 못한 사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결코 신앙인답게 살지 못하는 입다를 대신해서 순결하고, 죄없는 그의 딸이 입다의 실수를 다 끌어안고 하나님께 드려진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죄를 다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대신 해결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상징한다. 그것으로 인하여 부족한 우리의 죄가 하나님 앞에 온전함으로 서게 된다. 결국에는 사사 입다의 이야기 속에서도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확인할 수가 있다. 그 사랑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 가운데에 있을 때에 현실로 이루어진다.

내 죄를 넘어선 하나님의 사랑, 그 죄를 뚫고 극복하고, 우리의 가슴 속에 넣을 수 있는 넓이로 십자가를 이해해야한다. 우리를 불리하게 하는 모든 것을 박살을 내신 그리스도의 사랑. 그것이 복음이다.

나눔 질문

1. 누군가 내게 자연스러운 것을 죄라고 지적 혹은 충고한다면 어떻게 받아 들일 것 같은가.

2. 지금 내가 하나님 앞에서 가장 열심히 행하고 있는 신앙의 행동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그것을 왜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3. 성경을 읽다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나오면 내가 하는 반응은 무엇인가?

4. 내가 한 서원에 내가 얽매여 힘들어 한 적이 있는가? 어떻게 그것에서 벗어났는가?

5. 오늘 말씀을 듣고 내가 고쳐야 할 신앙의 행동이 있다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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