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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pictureSoo Yong Lee

사망을 이기는 신앙. 눅24:1~12절. 04.12.2020

기독교는 세상의 다른 종교와는 다른 여러 가지 독특한 부분이 참 많이 있다. 그 중 가장 유일한 부분이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그것은 ‘부활’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부활의 전제는 완전히 죽은 것이다. 생명의 흔적, 아니 그 잠재력도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것에서 시작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것이 성경이 말한 예언대로, 성경이 말한 시간에 돌아가셨고, 성경이 말한 때에 부활하셨다. 예수님은 유월절 전날 돌아가셨다. 유대력으로 1월 14일이다. 그런데 유월절 양을 언제 잡는가? 바로 1월 14일이었다(출12:5,6). 완전히 성경대로 정확한 날에 죽으신 것이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몇몇의 여인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 속에 담겨진 부활의 의미는 무엇인가?


1. 제 삼일의 의미

예수님은 오늘날의 현대력(그레고리력)으로 계산하면 금요일 오후 3시에 돌아가셨다.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일 새벽에 이미 부활해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실제 무덤에 있었던 시간은 하루 반 정도이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수요일 오후 3시에 돌아가셨다는 학설도 있다. 만일 이렇게 계산하면 성경에 나온 72시간(3일)을 무덤에서 보낸 것으로 계산해도 주일에 부활한 것이 틀리지 않고, 여인들이 무교절(명절 안식일)과 정기 안식일 두 번을 보냈다(눅23:55,56. 막16:1,2)는 계산도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계산하지 않더라도 예수님은 ‘제삼일(the therid day)’에 부활하신다(7절)고 하셨기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금요일 오후 3시는 유월절 전날이기에 하루로 계산하면 주일이 딱 제삼일(the third day)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중요한 것은 수요일이든, 금요일이든 요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경대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훨씬 중요하다. 이것은 예수님의 생일이 12월 25일이 맞느냐 안 맞느냐에 대한 논쟁과도 마찬가지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성경대로 태어나셨다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한 때에 예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만일 성경의 이야기 중에 조금이라도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나오면 공부하고 연구해서 알아야 한다. 성경은 논리와 과학의 책이 아니기에 분명 우리의 상식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우리의 게으름과 부족함으로 기독교의 진리가 퇴색되지 않기 위하여 마음을 다하여 진리를 바로 알고 전하기에 노력하는 자세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2. 여인들의 신앙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몇몇의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신에 항료를 바르기 위하여 무덤으로 찾아간다. 당시 시신에 향료를 바르는 것은 정통 유대인들의 장례법이 아니다. 그들은 시신에 손을 대지 않는다. 하지만, 예외의 경우가 있다. 사망자가 왕 일 경우에는 향료를 바른다. 이 말은 곧, 이 여인들이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에 그들이 어떠한 자세로 예수님을 섬기고 있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들은 예수님을 진정한 유대인의 왕으로 여겼던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애틋하고, 가슴 저미는 이야기인가. 그러나, 그들의 모습이 아무리 아름답고, 헌신적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다. 왜냐하면 참 신앙은 부활의 신앙까지 가야 한다. 예수가 나를 위하여 죽었다는 것은 참으로 감동적이고 눈물나는 이야기이지만, 그 예수를 믿는 것만으로는 완성이 아니다. 거기까지 믿는 신앙으로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우리의 신앙의 완성은 부활이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예수를 믿는 것이며, 우리 역시 언제고 죽지만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사망을 이기는 것이 신앙이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오르고, 예수님이 사랑스럽고, 그분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내 모든 것을 다 바쳐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할지라도, 내가 아는 예수가 십자가의 죽음까지라면 그것은 신앙이 아니다.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하고, 기도하고, 매일 성경을 읽기는 하지만, 부활의 얘기만 나오면, “정말 예수님이 살아 계신 것을 믿느냐?”는 질문에 머뭇거림이 있다면 다시 돌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진 신앙은 죽음까지가 아니다. 죽음을 이기는 신앙, 그 부활의 신앙이 기독교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못 믿는 사람은 삶 속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본문의 여인들은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보고 근심했다(4절).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에 3일 만에 부활하신다는 얘기를 수 없이 들었지만, 삶 속에 적용이 안 되고 있는 것이다. 이 부활의 역사를 내 삶에 적용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아무리 놀라운 일을 내 인생 속에 행하여도 모른다. 근심한다. 그리고 낙망한다. 이 부활을 개인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될 것이다(고전15:19).

3. 신앙의 진보를 이루는 삶의 방법

우리의 신앙이 현세적인 것에서 부활이 신앙으로 가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5~9절). 말씀을 기억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하나님이 나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관심이 없다. 내가 신앙을 가졌던 이유는 내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부활의 신앙이 들어가면 달라진다. 말씀을 구체적으로 내 삶에 적용하기 시작한다.

천사를 통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한 그녀들이 어떻게 행동하는가? 무덤에서 돌아간다. 어디로?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그리고 그 사실을 만인에게 알리기 시작한다. 무엇을 알리는가? “예수가 살아나셨다. 그는 여기 무덤에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라는 것을 자신 있게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신저가 되었다.

진짜 신앙은 사망을 이기는 것이 신앙이다. 현실이 어려울 때에 부활 신앙을 가지지 못하면 우리는 절망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내 현실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일지라도 부활 신앙이 있으면 이길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죽어도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이기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성경에 나온 비논리적인 것으로 인하여 고민해 본 적이 있는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가?

3. 내가 지금까지 받은 성경의 질문 중에 가장 난처한 질문은? 그것으로 인하여 배운 것은 무엇인가?

4. 불신자들이 보는 기독교인들에게 대하여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를 어떻게 볼 것 같은가?

5. 내 신앙은 ‘죽음’까지인가? 아니면 ‘부활’까지인가? 두 가지 답변 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개인적인 이유를 설명해 보라

6. 개인적으로 내 신앙의 진보를 이루는 방법이 있는가?

7. 평생 전도를 몇 명했는가?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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