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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oo Yong Lee

사도행전 강해(2) : 신자의 삶. 행1:5~11절.06.07.2020

내 믿음의 분량과 소원의 성취는 관계가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은 ‘믿음의 정의’로 답할 수 있다. 믿음은 ‘구원을 얻는 믿음’과 ‘성화의 과정 속에 요구되어지는 믿음’으로 나눌 수 있다.(롬1:17) 구원을 얻는 믿음은 내 결단, 의지와 상관없이 하늘로부터 쏟아 부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나 성화의 과정 속에 요구되어지는 믿음은 내 결단, 내 의지와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중요하다. 그런 의미로 보면 믿음과 소원의 상관관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이것은 믿음의 유아기 혹은 유년기 시절의 믿음이다. 장성한 신앙의 수준이 되면 더 이상 나의 믿음의 분량과 내 소원의 성취 여부는 크게 상관이 없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훨씬 더 다른 쪽으로 몰아가신다. 그것은 내 삶의 방향과 목적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훨씬 더 우리로 하여금 깊은 신앙이 싸움을 하게 하신다.


이 단계에서는, 추구하는 일이 안 되었을 경우에 ‘내가 믿음이 부족해서 일을 그르쳤다’라고 생각하기보다 하나님이 이 이 일을 통해서 내게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인가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렇게 내 신앙의 사고와 방향을 다시금 말씀으로 정립하는 것으로 훨씬 더 좋은 신앙의 성숙을 이룰 수 있다.

제자들의 경우를 살펴보자. 제자들은 오랫동안 갖고 있던 소원이 있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독립’이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너희가 성령으로 침례를 받게 될 것’(1:5)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이 말을 곧 지금까지 없던 다른 종교 의식이 도입이 되면 자기들의 소원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고 해석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그것은 신앙을 ‘내 소원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여길 때에 생기는 현상이다. 자신의 신앙의 열심과 정성과 노력은 결론적으로 자기의 소원의 성취 여부와 밀접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신앙을 갖고 있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분명히 응답하신다. 그런데 자기의 뜻과 모양대로 안 이루어지면 하나님이 내 기도를 안 들어주신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자신의 믿음의 분량이 작기 때문에 벌어진 것으로 치부한다.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안 들어 주시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기도의 응답의 결과가 내 소원과 하나님이 제시하는 방향이 달라서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일이 생길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역시 기도해야 한다. 그럼 어떤 마음을 갖고 기도해야 하는가.

1. 아버지의 권한에 대한 이해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이 지금이냐?’라고 묻자 예수님이 그거는 ‘아버지의 권한’이기에 너희가 알바가 아니라고 대답하셨다. ‘아버지의 권한’은 어떤 의미인가. 이것은 유대의 결혼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유대인들은 먼저 신부 집에서 정혼을 한 후에 약 1년간 떨어져 지낸다. 이 때 신부는 신랑 가정의 문화를 배우고, 신랑은 신부와 살 거처를 짓는다. 그 뒤 아버지가 보기에 아들이 신부를 맞이할 만한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되면 아들에게 신부를 데리고 오는 것을 허락하여 신부를 신랑 집에 불러서 다시 한번 결혼식을 한다.

이 때 신부를 데리고 오는 시기를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아버지의 권한’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 때와 시기가 ‘아버지의 권한’에 있다는 것은, 신자는 아버지의 관심 아래 있고, 목적을 갖고 훈련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이것을 모르고 하는 기도는 주문이지만, 아버지의 권한을 이해하는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들어온 인격적인 기도이다. 그분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통해서 내가 이 땅에서 어떤 것을 준비하며 살아야 할지를 알 수 있다. 또한 이를 통하여 그 분의 뜻의 합당한 신자의 삶을 살 수가 있다.

2. 하나님이 비전과 계획

8절에 등장하는 ‘오직’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ἀλλὰ(알라)’이다. 이 단어의 뜻은 본래 ‘그러나’이다. 이 접속부사는 앞의 내용과 상반되는 내용이 이어질 때에 사용되는 단어이다. 8절 앞에 등장하는 내용은 제자들이 자기들의 소원, 바람이 언제 이루어질 것에 대한 관심이었다. 그 말을 받아서 예수님이 신자란 ‘너희의 소원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며 그들의 기대와 반대되는 내용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하는 신자의 삶은 무엇인가.

그것은 ‘증인의 삶’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증인이 되어라’라고 말하지 않았다. ‘증인이 되리라’라고 말했다. 어떤 차이가 있는가. ‘증인이 되어라’는 명령형이다. 이것은 종된 우리가 마땅히 지키고 따라야 할 의무이다. 여기에는 우리의 의지가 중요하다. 이것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숙제이기에 그것을 이루지 못하면 자책이 생기고 때로는 절망과 좌절도 동반하게 된다.

그러나 ‘증인이 되리라’는 미래형이다.

내 의지로 내가 이루어내는 것 보다 그에게 앞으로 이루어질 일에 대한 예언적 성향이 강한 말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지요, 계획이요, 그의 열심으로 인하여 빚어지게 될 앞으로의 내 모습이다. 이것은 조금씩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갑자기 어느 날 한 순간에 변화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신자의 삶에 끊임없이 개입하시고 의지를 갖고 행하신다는 것이 강조된 말이다.

주목할 점이 있다. 그것은 ‘증인’은 ‘경험한 것을 진술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반드시 머리가 아닌 직접 보고 들은 것이 있어야 한다. 즉,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개입하여 당신의 살아계심과 전적으로 신뢰할 만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내 삶 속에서 계속해서 경험케 해 주겠다는 의지이고 약속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신자의 삶은 다른 사람보다 고달플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내가 가진 능력과 재능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누리는 자리는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내 힘으로 안 된다는 자기 부인의 삶으로 항상 인도 받는다. 그 때야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라는 것을 증거하는 증인이 될 수 있다. 우리의 실패와 절망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이 더욱 드러나게 될 것이다.

3. 자신의 본 모습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이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다. 그 후 천사가 나타나서 예수님의 재림을 예언한다. 그 때 이 천사들이 제자들을 부른 호칭은 ‘갈릴리 사람들아’이었다. 이 호칭은 결코 유쾌한 호칭이 아니다. 왜냐하면, ‘갈릴리 사람들’이라는 말은 당시에 가난과 무지와 보잘 것 없음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천사들이 나타나서 그들의 본래의 모습, identity를 꼭 집어서 얘기하고 있다. 왜 그랬을까...

이제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언한, 바로 그 증인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 때 그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그 능력은 그들의 잘남으로 이루어진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사 품으신 그의 사랑의 선택이었다. 연약하고 무능하고 비천한 자를 들어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임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이 신자이다. 그것을 확인하는 자리가 ‘증인의 삶’이다.

이제 예수님을 핑계 삼아 나를 자랑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 진정한 신자의 삶은 엉망이고 부족한 나인데도 나를 끌어안고 계시는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 그것이 신자의 삶이다. 우리는 그 일에 부름을 받았음을 기억하자.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내 소원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 내가 하는 반응은 어떤 것이 있나.

3. 내가 꼭 받았으면 하는 능력, 재능 혹은 은사가 있다면 무엇인가

4. 현재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증인의 삶은 무엇인가

5. 나를 준비시키는 하나님을 느낀 적이 있는가. 그것이 어떻게 쓰여졌거나, 쓰여질 것 같은가

6. 오늘 성령님이 나에게 ‘증인이 되리라’라는 말을 직접 하신다면 어떤 마음이 들 것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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