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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강해(17) : 흩어진 자들과 복음 행8:1~8절.09.20.2020

오늘 본문은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벗어나 열방을 향해가는 기점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이 과정 속에 나타난 하나님이 일하심은 무엇인가.

1. 약속의 성취

예수님은 이 땅을 떠나시기 전에 ‘모든 민족을 제자를 삼으라’(마28:18~20)라는 ‘지상명령’을 하셨다. 그리고 사도행전에 오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행1:8)는 말씀을 하셨다.


이로 인해 우리는 이 말씀 역시 주님의 명령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 문장은 ‘명령문’이 아니다. ‘성령이 임하시면’으로 시작하는 ‘조건문’이다. 또한 ‘내 증인이 되리라’라는 ‘미래형’이다. 즉, 이 말씀은 ‘명령’이 아닌 ‘예언’의 성향이 짙은 말이다.

제자가 되는 조건은 ‘성령이 임하면’이다. 그런데 2장에 이미 성령이 임했다. 그러면 남은 일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는 일’이 남았다. 그런데 제자들이 아직까지도 ‘유대주의’ 사상에 잡혀서 복음을 이방에게 전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동원하신 카드가 ‘스데반의 순교’이다. 이 일로 인해서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가 일어나고 사도행전 1장 8절의 예언과 동일한 지역(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땅 끝)으로 흩어지게 된다.


이 흩어진 그들이 무엇을 했는가. 복음을 전했다.(4절) 이로써 이 스데반의 순교로 ‘내 증인이 되리라’라는 예수님의 예언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에 어떤 목적과 계획이 있으면 우리의 연약함과 게으름과 부족함 때문에 당신의 계획을 포기하거나, 변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그 골(goal)을 이루는 방법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분이 이루실 목표와 내용은 하나도 바뀌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우리의 인생의 가장 큰 실패라고 할 수 있는 ‘죽음’마저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이루실 ‘도구’로 사용하신다. 그 죽음 역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이루는 것에는 전혀 방해를 받지 않는다.

특별히 4절의 ‘흩어진’이라는 단어는 ‘씨를 뿌리다(디아스페이로)’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단어가 ‘수동태’로 쓰였다. 무슨 말인가. 지금 복음을 ‘흩어진 자들’이 뿌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씨가 되어, 뿌려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들을 뿌리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들이 결심하여 마음을 먹고 흩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하나님이 이들을 흩으신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나의 조건과 상황에 상관없이 일을 하신다. 하나님은 준비된 자를 사용하신다. 하지만,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준비를 시켜서라도 당신의 목표와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시다. 그렇기에 우리는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게 될 것이다.

2. 엇나간 신앙

본문에 등장하는 ‘흩어진 자들’은 누구인가. ‘사도 외에는’ 다 흩어졌다고 했으니 분명 사도는 아니다. 평신도이다. 순교도 제일 먼저 평신도가 했고, 이방인 전도도 평신도가 시작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이다. 초대 교회에는 평신도가 말씀을 가르치고, 평신도가 설교를 했다.

이전에는 이 일을 특권층(바리새인, 서기관)만이 감당했다. 하지만 예수님 이 후에는 말씀을 전하는 일을 평신도가 감당했다. 그렇기에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라는 말 속에 이 평신도 말씀 사역을 처음부터 잡아 놓지 않으면 구조만 바뀌지 내용은 바뀌지 않은 기성교회와 하등의 차이가 없는 교회가 된다. 말씀 사역은 복음을 가르치는 일을 훈련한 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며, 해야만 하는 일이다.

본문에 등장하는 ‘박해자들’은 누구인가. 흔히들 하나님을 안 믿는 자들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들은 열심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이다. 이들은 기독교를 핍박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 그것은 하나님께 열심은 있으나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롬10:2) 한 마디로 ‘어긋난 신앙’이다.

이런 것은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요즘 현 세대에도 말씀에 근거하지 않고 내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이 따르지 않은 열심은, 스데반을 죽이는 큰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을 명심하고 말씀을 깊이 있게 공부해야 한다.

3. 흩어진 사람들

빌립 집사는 ‘흩어진 사람들’ 중 한 명이다. 그렇기에 빌립이 하고 있는 일은 ‘흩어진 자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빌립을 통해서 사마리아인들이 구원을 받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환란과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고 목숨을 다하여 복음을 전한 빌립’을 본 받으려고 마음을 먹는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사실 빌립이 그런 사명과 담대한 자세로 복음을 전했던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의 현실적 정체성은 ‘도망자’이기 때문이다. 그가 사마리아를 갔을 때에도 현지 복음화의 꿈을 안고 간 것이 아니었다. 박해를 피해서 숨을 곳을 찾아 사마리아로 간 것이다. 왜냐하면 사마리아 땅은 유대인들이 가장 기피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실제적으로 그곳이 안전하다고 생각했기에 그곳으로 간 것이다.

빌립은 또한 말씀 증거를 위해 집사가 된 것도 아니었다. 음식 공궤를 위해서 직분을 받은 자였다.(6장) 그는 사마리아인과 에티오피아 내시의 구원을 계획한 것이 아니었다. 복음이 온 땅에 전파 된 것도 인간의 계획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연약한 도망자인 ‘흩어진 자들’을 통해서이다.

성경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쓰임을 받는 것은 내가 잘나거나, 뛰어나서 쓰임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단 한 가지 내가 크리스천이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고 현재 내 앞에 놓인 작은 일을 행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된다는 것이다.


지금은 우리 모두가 ‘흩어진 자’임을 잊지 말자. 아무런 능력도 없고,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은 자들이지만, 내가 크리스천이라는 그 정체성을 잊지 말자. 그것이 확인되면 하나님께서 내가 행할 일을 보여 주실 것이다. 그 일을 묵묵히 감당하자.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충분히 당신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실 것이다.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행1:8절이 ‘명령’일 때와 ‘예언’일 때에 나에게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하나님의 관점에서 말해 보라

3. 하나님이 복음을 위하여 나를 흩어 놓으신 경험(감정, 물리적 환경, 상황 etc...)을 한 적이 있는가.

4. 내가 주를 위하여 한 행동이 돌이켜 보면 부끄러운 경험과 오히려 해가 된 적이 있으면 무엇이었는가.

5. 평신도가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6. 내가 빌립과 같은 도망자였다면 사마리아 땅에서 어떻게 했을 것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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