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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강해(15) 스데반의 설교. 행7:1~10절. 09.06.2020

스데반은 자유민들과의 논쟁에서 승리를 하는 바람에 거짓 고소를 당했다. 그들이 스데반을 고소한 내용은 크게 두 가지이다. 이 자가 ‘성전을 헐어버리려고 한다’는 것과 ‘모세가 우리에게 전해 준 규례(율법)을 고치려 한다’는 것이다.


이에 스데반은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유대인들에게 자기변호를 하는데 그것이 아주 강력한 한 편의 설교였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예수가 그리스도(구원자)임을 증거하고 있다.

그의 변증의 주된 내용인 성전과 율법에 대한 부분을 살펴본다.

1. 성전

스데반의 설교에는 ‘아브라함, 요셉, 모세, 다윗과 솔로몬의 이야기’가 등장을 한다. 이 네 시기의 특징은 어느 때에도 하나님의 임재가 어떤 특정한 장소에 제한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이 상당히 능동적으로 이 곳, 저 곳에서 활동하시고, 그들이 가는 곳에 동행, 인도를 하시는 분이셨다.

스데반은 이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이 성전에 계시는 분으로 국한 시킨 것은 너희들이지 하나님이 원하셨던 것은 아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 예로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이 나의 보좌고 발판인데 왜 내가 집이 필요한가’(14절)라고 하신 이사야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문제는 많은 부분이 여기서 발생을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준이 되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항상 신앙의 성숙을 막는 장애 요인으로 작용을 한다.

유대인들은 스데반의 설교를 너무 싫어했다. 어느 정도로 싫어했는가. 본래 로마의 최종 결제를 받아야 하는데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일 정도로 싫어했다.


왜 그토록 싫어했는가.

그들에게는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민족’이라는 것이 그들이 갖고 있는 큰 자부심이고, 타민족과 구분 짓는 잣대이다. 그런데 스데반이 그것을 흔들어 놓았다. 하나님은 성전에 계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예로 유대인들의 조상들의 예를 들었다. 아브라함의 경우에는 하나님이 그를 처음에 불렀던 곳도 성전이 아니었다. 이방신이 범람하던 ‘메소보다미아’였다. 모세의 경우에도 하나님이 그에게 처음 나타나셨던 곳이 광야의 산 한 가운데 떨기나무에서였다. 무슨 얘기인가. 하나님은 거룩한 곳에 계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 거룩한 곳이라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이 예배당 안에 계시기 때문에 예배는 원칙적으로 예배당에서 드려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결코 성경적인 것도 아니고 오히려 스데반이 자기의 목숨을 걸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반대로 가는 행위이다.

그렇다면 이제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릴 필요가 없는가.

아니다. 가능하면 예배당에서 드려야 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집, 산, 들, 바다에서 예배하는 것 보다 예배당에서 예배하는 것이 하나님께 훨씬 더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육신을 입고 있는 우리의 실상이다. 또한 예배당 안에서 모여 예배할 때에 공동체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2. 율법

스데반의 설교에는 여러명의 등장인물들이 나오지만 실제 가장 중요한 초점은 아브라함과 모세이다. 이 두 사람이 ‘하나님의 선택’이라는 기준으로 봤을 때에 그들의 민족주의의 가장 뿌리가 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먼저, 아브라함을 살펴보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직접 불러내셨다. 그리고 그에게 ‘내가 너와 네 자손을 통하여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이것이 이들이 말하는 ‘선민사상’이다. 하나님께서 수 많은 민족 중에서 유대인을 택하셨다는 것이다.

왜 유대인인가. 이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택한 것은 다른 민족들 보다 우수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브라함을 택한 것도 하나님 보시기에 유일하게 합격점을 받은 사람이라 그를 택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땅을 살아가는 최고의 자긍심이고 존재이유이며, 그들의 갖고 있는 기본 사상이다.

모세는 어떠한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유대인들에게 주었다. 율법은 상당히 지키기 힘들고 까다롭게 수준이 높다. 그런 율법을 유대인에게 주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이다. 자신들 만이 그것을 지키고, 이해하고, 감당할 만한 그릇으로 여겼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셨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스데반이 설교를 통하여 모든 것을 다 깨뜨리고 있다. 아브라함의 본모습은 우상을 섬기던 자였고, 기근 때에 이집트로 도망간 자였다. 너희 조상은 400년을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했으며, 요셉이 총리대신이 된 것도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에게 은총과 지혜를 주었기 때문이었다고 전하였다.

특별히 그가 강조한 부분은 위대한 인물 요셉도, 모세도 너희가 다 내 쫓고, 그들을 키워낸 것은 이방인들이었으며, 너희는 본래 그들을 거절했었던 것을 콕 찝어 말하고 있다. 무슨 말인가. 요셉도, 모세도 너희가 거부하고 몰아내고 죽이려고 했었던 것처럼 그 배척의 실수를 예수님에게도 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얘기는 그들 모두가 알고 있는 얘기였다. 단지 워낙 큰 치부여서 말을 안 하고 모른척하고 있던 것인데 그것을 스데반이 낱낱이 파헤치니까 자존심이 뭉개진 유대인들이 그 자리에서 그를 죽였던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를 구원하고 민족의 조상 삼으셨다. 그런데 그 때에는 율법이 없던 시대이다. 율법은 그 후 430년이 지난 모세 때에 등장을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율법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 믿음으로 만이 우리는 구원을 얻고, 그 믿음으로 복을 받는다.

그렇다면 율법은 이제 필요 없는가. 그렇지 않다. 율법은 우리에게 필요하다. 왜냐하면 율법이 우리에게 ‘초등교사’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갈3:24) 즉, 우리는 율법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있는 곳으로 인도함을 받는다.


율법을 통하여 인간의 죄성이 드러나고, 그것을 지켜낼 능력이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어 비로소 그리스도가 내게 필요함을 알게 된다. 또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자의 삶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율법은 구원 받는 자의 삶의 방향을 보여준다. 그것이 율법이 필요한 이유이고, 율법의 존재이유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인생이다.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부름과 사명에 힘을 다하여 그분의 영광과 존귀에 함께 참여하는 자가 신자이다.

나눔 질문

1. 하나님이 이곳에 나와 함께 계심을 느꼈던 적이 있었는가. 구체적으로 나누어 보라

2. 나를 자극하는 말과 행동은 무엇인가. 왜 그런 반응을 보인다고 생각하는가

3.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릴 때와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릴 때의 장점과 단점을 말해 보라

4. 율법이 나에게 족쇄처럼 느낀 적이 있었는가. 지금은 율법에 대한 생각이 어떠한가.

5. 오늘 말씀을 듣고 내게 생긴 큰 변화와 도전이 있다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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