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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pictureSoo Yong Lee

무너진 성벽 재건 XIII :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 느9:38. 10:28~39절. 09.22.2019

성경에는 하나님이 인간과 ‘언약’을 맺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다. 여기서의 ‘언약’은 히브리말로 ‘베리트’로서 ‘계약(covenant)’과 같은 말이다. 성경에 나온 하나님의 언약의 특징과 의미를 살펴보겠다.

1. 하나님의 언약의 특징

하나님의 강한 임재를 체험했던 백성의 지도자들과 제사장들이 하나님 앞에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기로 견고한 언약을 세워 맹세와 서명을 한다. 그것으로 본인들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회복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말은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정답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약 방법과 인간의 계약 방법은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는 계약은 항상 쌍방의 합의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약은 늘 하나님으로부터 일방적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동의와 합의를 구하지 않는다. 늘 일방적으로 본인이 혼자 결정하고 언약을 선포한다. (e.g: 모세 출3:11,12, 여호수아 수1:5, 야곱 창28:15 etc...)

아브라함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계속된 실수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를 징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실패할 때마다 나타나 그에게 용기와 격려를 보내며 ‘너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게하겠다’라는 약속이 여전히 유효함을 지속적으로 나타내 보여줬다. 하나님이 도대체 왜 그렇게 행하시는가? 인간과 맺은 약속이 무엇이기에 그토록 혼자 변함없이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을 지켜 나가는가?

창세기 15장에 보면 하나님은 자신을 믿고 갈대아 우르를 떠났던 아브라함에게 시청각 자료를 동원하여 다시 한번 그의 약속의 불변함을 확인시켜 주신다. 첫 번째가 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창15:5). 그런데 뜻밖에 아브라함이 감동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시청각 자료를 하나 더 준비하셨다. 그것은 당시의 팔레스타인 계약 문화를 그대로 사용하셨다.

당시의 계약법은 계약을 맺고자 하는 두 사람이 서로 마주하여 서서 짐승들(소, 양, 염소, 비둘기 etc...)를 반으로 쪼갠 후 그 쪼개진 사이를 서로 걸어가는 것으로 계약을 했다. 이 의미는 두 사람 사이에 누군가 한 사람이 계약을 깨면 이 짐승처럼 쪼개져 죽을 것을 약속하는 것이다. 곧, 생명을 건 계약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짐승을 쪼개 놓으라고 명령하시고, 그 쪼갠 짐승 사이로 혼자(!) 지나가신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아브라함의 약속 실행 여부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고자 한 그 모든 약속을 거두지 않고 이루어 내겠다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걸고, 너를 지켜 주겠다는 약속을 이행하겠다는 뜻이다.

이 약속이 나중에 어떻게 구체화 되는가? 후에 인간의 죄악이 차고 넘쳐서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구원에 이를 수 없게 된다. 그 때 하나님께서 직접 이 땅에 내려오셔서 칼과 창에 찔려 돌아가심으로써 생명을 건 그 약속을 이루어 내셨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느헤미야 10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언약식을 하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회복이 아니다. 왜냐하면, 본래의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에는 인간의 행위가 포함이 되어있지 않았다. 인간들은 언제나 불순종하였지만, 하나님은 혼자 스스로 세우신 언약을 한번도 깨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2. 이스라엘 백성의 언약의 의미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고 서명한 내용은 모세의 율법에 근거한다. 모세의 율법은 자그마치 613개로 이것을 다 지키는 것을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복음의 시각으로 이 장면을 해석하면 그렇게 결심해도 인간들은 안 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슨 일만 생기면 하나님 앞에 돌아와 결심하지만 언제나 그것은 그 때뿐이었다. 울며, 결심하고, 다짐해도 그들은 다시 죄악으로 향하여 갔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자들이기에 하나님이 버렸는가? 다른 민족을 택했는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그들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을 붙잡고 인도하시며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들을 다 완성시키셨다. 이것이 복음이다. 성경 66권에서 강조하는 사실은 나의 추악한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구원을 포기한 적도 없고, 전적으로 하나님이 혼자 이루어 내신다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신자에게 허락된 은혜이다. 그것이 복음을 가진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그럼,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3. 말씀 안에 거함

구원을 받기 위하여 우리가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단지 믿음 하나면 된다. 그러나, 구원을 받기 위하여 할 일이 없다고 해서 신자로써 살아야 할 방향과 목표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우리는 선택 받은 백성답게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림 받기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한다. 율법이 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율법은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아 그리스도의 필요함을 알게 하고, 더 나아가 신자로써 이렇게 살아야 할 방향, 사명, 의무를 제시한다. 그것이 율법의 역할이다.

하나님이 인간과 언약을 세울 때에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행하신다. 첫째는 아브라함의 방법이다. 잦은 실패와 실수에도 변함없은 애정과 사랑으로 격려하시는 것이다. 둘째는 모세의 방법이다. 모세에게는 상당히 엄격하게 하신다. 복을 약속하며 계명을 지킬 것을 조건(!)으로 요구하신다(신28:1,2).

그러나, 모세에게 말씀하신 강력한 조건의 의미는 하나님의 법을 잘 지키는 것이 본인에게 유익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그렇게 살기를 원하시는 강력한 표현이다. 표현의 방법이 다를 뿐이지 내용에 있어서는 너에게 복을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에는 동일한 것이다. 이것을 확실히 인지한다면 이 두 언약을 통하여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통한 내 삶의 자유함을 맛보게 될 것이다.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구약의 모든 내용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연결된 것을 알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e.g: 아브라함 에게 한 계약의 방법...)

3. 내가 하나님 앞에서 말씀에 근거한 자주 결심하는 무언가가 있는가?

4. 내가 그래도 하나님 앞에서 잘 지키는 것 같은 신자의 삶이 있다면 무엇인가?

5. 내게 하나님은 무서운 하나님인가? 아니면 인자와 자비의 하나님인가?

6.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강력한 나만의 증거가 있는가? 내가 체험한 무언가를 말해 보라

7. 말씀 안에 거하기가 힘든 요인들은 무언인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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