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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pictureSoo Yong Lee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라 XVI : 나를 기억하옵소서. 느13:4~14절. 10.13.2019

12장을 끝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염원했던 성벽 건축은 마치고, 예배와 봉헌식까지 다 마치었다. 자신의 사명을 끝낸 느헤미야는 페르시아로 돌아갔다가 1년 후에 돌아왔다. 그런데 귀국을 해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썩어 있었고, 성전 업무를 해야 할 레위인들이 밭일을 하고 있었다. 죄가 창궐할 때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이것이 오늘 본문 13장의 배경이다.

이 13장에 나온 이스라엘의 다시 타락한 모습을 통하여 알 수 있는 3가지의 사실은 무엇인가?

1. 성경의 진정성 : 성경은 정말 믿을 만 하다는 뜻

대부분의 다른 종교 서적은 품위가 있고, 고상하며 최고의 도덕적 수준을 요구한다. 이런 내용이 있어야 종교 서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이 된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않다. 성경을 읽다보면 너무나 더럽고 추잡한 내용들이 가득하다.

살인은 말할 것도 없고, 도둑질, 배반, 사기 뿐만 아니라 아주 많은 내용 중에 근친상간, 심지어 매춘, 간음도 있다. 더 놀라운 것은 많은 경우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한다. 어떻게 이런 내용이 들어있는 것이 한 종교의 근본이 되는 경전이라 말할 수 있는가...

느헤미야서도 12장의 끝은 어렵사리 성벽 재건을 끝내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백성들이 즐거워하는 내용으로 마친다. 그런데 굳이 일부로 13장 한 장을 더 넣었는데 그 내용은 없는 것만 못한 것처럼 느껴진다. 느헤미야의 마지막이 잘 된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백성들이 타락으로 인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피눈물로 기도하는 것으로 끝이난다.

왜 성경은 이런 식으로 모든 일들을 그려나가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이 성경의 이야기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과 가장 가까운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가식이 없다. 꾸미는 이야기도 없다. 인간 세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이야기들을 가장 위선 없이 솔직하게 그리고 있다.

만일 성경의 모든 인물들이 우리가 감히 할 수도, 흉내 낼 수도 없는 일을 해 낸 것으로만 그려져 있다면 우리는 모두 희망이 없다. 성경의 여러 인물들이 실패한다. 그리고 느헤미야도, 그 훌륭한 인물도 마지막까지 좌절을 겪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그들이 축복의 삶을 이어간다면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 우리의 모든 허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나의 삶을 인도하시며 책임지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경을 사랑하며 믿을 수 있다.

2. 계속되는 신앙의 싸움

느헤미야가 1년 동안 이스라엘 땅을 비운 사이에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제사장 엘리아십이 이방인 원수인 도비야에게 성전의 한 방을 내 준 것이다. 그것도 하나님의 물품을 쌓아둔 것을 치우면서까지 방을 주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성전을 건축하여, 성경책, 십자가, 헌금함을 넣어둔 방을 이단 목사에게 공짜로 주었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엘리아십은 본래 타락한 사람이 아니었다. 성벽의 양문을 건축할 때에 다른 제사장들을 일깨웠던 사람이고, 성전의 재정을 맡을 정도로 신실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를 매니지(manage)하는 느헤미야가 자리를 비우니 금방 타락했다.

이것이 모든 인간의 모습이다. 우리 중 그 어느 누구도 누군가 나를 감시하고, 책임을 묻는 사람이 없다면 죄를 안 짓는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사실을 알아야 방심하지 않고 죄의 유혹을 이길 수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율법)대로 살기 위해 노력해야 죄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 받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율법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가? 그 첫 번째 이유는 우리는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자녀의 신분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율법은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 하지만, 구원 후의 우리의 삶의 방향과 지표를 보여주는 것이 율법이다.

두 번째 이유는, 악의 세력(사탄)에게 끊임없이 내가 싸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나는 세상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 우리의 삶의 전부를 맡기어야 한다. 그러나, 매일 벌어지는 죄악과의 싸움에서 소극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용기와 기백을 그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고 우리가 기꺼이 싸워야 할 싸움이다.

3. 느헤미야의 통곡의 기도

느헤미야가 1년 만에 돌아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1) 무너진 십일조의 회복, 2) 안식일의 회복, 3) 이스라엘 혈통의 회복 운동이었다. 이 운동 한가지, 한가지를 할 때마다 느헤미야는 똑같은 기도를 세 번 반복한다. 그것은 ‘나를 기억하고, 내가 한 일을 도말하지 말아 달라’는 기도이다(14절).

이 기도는 모세가 하나님 앞에 엎드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거두어 달라고 한 통곡의 기도와 같다. 느헤미야는 예수님의 그림자이다. 그러니까, 지금 이 느헤미야가 자기를 기억하사,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이룬 일을 도말하지 말아달라고 외치는 이 기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 달리며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한다’고 외쳤던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서서 우리들을 변호하시고, 중보하셨던 바로 그 기도를 말한다(눅24:34). 즉, 십자가의 죄사함을 도말하지 말라는 기도이다.

행여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빠져서 하나님 나라의 자녀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할지라도, 예수님께서 ‘내가 달린 그 십자가의 공로를 잊지 말고 이들을 구원해 달라’는 예수님의 피 묻은 절규의 기도가 이 느헤미야가 하나님 앞에 올리고 있는 기도이다.

이 예수님의 중보 기도가 있는 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는 피해갈 수가 있다. 이 예수님의 피끓는 간구가 있는 한 우리는 영원한 생명과 천국을 보장 받은 인생으로 마지막까지 살게 된다는 것이 복음이고, 내 삶을 회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예수님 만이 이 싸움에서 이기게 할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믿고 나아갈 때에 이 어려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신자의 삶을 맛 보게 될 것이다.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성경에서 가장 믿기 어려운 부분은 무엇인가? 왜 그것을 믿지 못하는가?

3. 성경의 인물 중에 내가 존경하는 분, 위로가 되는 분 혹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유는?

4. 내가 지금까지 이 정도 사람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은 누구인가? 이유는?

5. 나는 죄의 유혹에서 잘 넘어지는가? 아니면, 잘 이기는가? 유혹이 올 때 나만의 대처법은 무엇인가?

6.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신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실제로 느낀 적은 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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