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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oo Yong Lee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라 XIV : 강권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느11:1,2절. 09.29.2019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 많은 모함과 음모를 이기고 전쟁의 위험 속에서 52주 만에 성벽 재건을 이루었다.

그 후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며 말씀대로 살 것을 하나님 앞에서 서원하고 서명 봉인하여 결심을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예루살렘 성벽 안으로는 아무도 들어와서 살려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곳은 140년 동안 피폐한 채로 방치 되어 있었기 때문에 들어가면 다시 집을 짓고 땅을 개간하는 수고를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성안에 들어와 자리를 잡게 되었는가?

1. 강권적인 이주

백성의 지도자들은 무조건 예루살렘 성안에 들어가서 살고, 남은 백성의 10분의 1은 제비 뽑아서 거주하게 하였다(1절). 즉, 강제 이주를 하게 한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들어가는 사람을 뭐라고 표현했는가? 2절에 보면, 그들이 ‘자원하여’ 들어갔다고 얘기한다. 억지로 의무적으로 들어간 사람들을 하나님은 자원한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것은 영적으로 이런 의미이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의지와 노력과 공로와 아무 상관없이 강권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아래 이루어진다(딛3:5). 하나님은 하고 싶은 대로, 자기 고집대로 살았던 아브라함과 야곱과 이삭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그들을 격려하고 설득해서 믿음의 영웅으로 만들어내셨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자신의 열심으로 다 이루어 놓은 일을 ‘네들이 열심을 내어서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되었다’고 그 공로를 우리에게 돌리신다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구원 사역이다.

2. 선택의 자유

이스라엘 백성의 이주가 강권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원한 것처럼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은 ‘예정론’을 이해하는 자만이 해석이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기독교 신학의 근간이 되는 이 ‘예정론’은 흔히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운명론’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예정론은 운명론이 아니다. 그 정의를 비교해 보자

- 운명론 : 인생의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고 믿는 것 ->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전 생애가 하나의 도표를 갖고 태어나기 때문에 선로 위에 놓여진 기차처럼 모든 것이 정해진 코스대로 간다는 것.

예정론 : 하나님께서 한 인생을 창세전에 계획하시고, 그 인생에 대한 목표를 의지로 이루어 내신다는 뜻. 모든 인간은 인생의 목표를 이루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생애의 곳곳에서 ‘예’, ‘아니오’ 혹은 ‘보류하겠습니다’라고 답할 수 있는 의지가 있다. 즉, 예정론은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목표, 골)은 결정적이나 그것을 이루는 인생과정은 그 때 그 때 마다 다르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이런 질문이 생긴다. 하나님께서 목표한 지점까지 우리를 무조건 끌고 가신다면 ‘자유의지’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는 ‘결정권’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자유의지는 우리에게 주어진 사람의 운명(목표, 골)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주어진 인격을 논할 때에 우리는 ‘지식(지), 감정(정), 의지(의)’를 이야기 한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길을 걸을 때에 내게 있는 지식으로 판단하고, 감정으로 마음이 동하여, 의지로 행동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의 목표를 정하시고 끌고 가는 도중에 우리는 우리의 자유의지로 궤도를 이탈할 수 있다.

그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물건처럼 집어다가 정상 궤도 위로 다시 올려놓지 않으신다. 우리 앞에 재난, 질병, 고난 등의 가시덤불을 사용하여 우리로 하여금 궤도가 이탈되었음을 알게 하신다. 그 때 우리는 경험으로 획득된 ‘지식’으로 이 길이 옳지 않음을 깨닫고, 두려움을 느껴(감정), 나의 걸음을 수정하여 정상적인 궤도로 스스로 들어오게 된다(의지). 이것이 성경이 이야기하는 ‘자유의지’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택한 백성에게 목표를 갖고 계신다. 그 목표를 향해 우리를 도달케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의지는 그 누구도 꺾을 수가 없다. 아담과 하와가 자신들의 자유의지로 타락을 택하였다. 그 때 하나님은 그것을 방관하여 두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가장 큰 값비싼 대가를 치르시고 그 목적지로 인간을 다시 끌고 오셨다. 그게 바로 ‘십자가’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면서까지 그 일을 이루어 내신 것이다. 하나님의 ‘고집’과 ‘의지’를 이보다 더 잘 나타낸 것은 없다.

인간은 타락을 결정할 수 있으나 운명(목표, 골)을 결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의 치명적인 실수와 문제로 끝장나지 않는다.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예정론’이다.

3. 예루살렘 = 거룩한 성

성경은 예루살렘이 ‘거룩한 성’이라고 얘기를 한다. 우리는 거룩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고결, 순결, 깨끗, 흠없음’이다. 하지만, 현재의 이스라엘 상황은 140년간 버려져 있어서 폐허이고, 피폐하다. 무슨 의미인가? 성경에서 말하는 거룩은 물리적인 환경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상황과 환경과 상관 없이 ‘하나님이 함께 하는 곳’이 거룩한 땅이다.

이런 성경의 시각을 놓치면 우리는 우리의 행복을 엉뚱한 곳에서 찾게 된다. 성경의 행복, 기쁨, 평안은 다툼과 분쟁이 없는 물리적인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 것’이 평안이요. 행복이다. 오히려 물질적, 공간적 편이들이 내게 주어지지 않더라도 그 어떤 하늘로부터 쏟아지는 은혜, 내가 어떤 상황 속에 있더라도, 나의 선택이 어떠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인도와 그분의 나를 향한 의지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그 믿음이, 오늘의 나를 평안과 안위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의 마지막 끝에서 하나님을 볼 것이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께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 생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뭐라고 대답하실까?

아마도 그 말을 받아서 이렇게 응답하실 것이다. ‘내 아들아, 딸아. 아니야. 그건 네가 한 거야. 그건 네 열심과 네 재능과 네 노력으로 네가 이루어 낸 일이야’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이 이루신 모든 것도, 자신이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모든 공로도, 우리의 자원하는 마음으로 인정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 하나님의 강권하시는 은혜이다.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내 고집과 하나님의 고집이 맞붙어서 고민하고 씨름했던 부분이 있었는가? 구체적으로 나누어 보라

3. 내가 알고 있던 예정론과 말씀을 통해 들었던 예정론의 차이는 무엇이었는가?

4. 내 ‘자유의지’로 행한 일들을 하나님이 바꾸어 놓은 일들을 나누어 보라

5. 나는 거룩한 사람인가? 그렇다 혹은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 이유를 말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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