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벽 건축 후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렸다. 그들은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 눈물을 흘리고, 감격해 한다. 그렇다면, 이제는 ‘구원, 그 이후’ 하나님의 은혜를 맛 본 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1. 말씀을 밝히 아는 삶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스라로부터 선포되어지는 말씀을 통하여 깨달음을 하나 얻게 되었는데, 그것은 지금까지 그들이 초막절을 잊고 지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참 바른 신앙을 갖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기독교는 이해와 납득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납득하기 때문에 공감하고, 공감하기 때문에 믿는다면, 그를 신앙인이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상식적인 사람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천치를 창조하신 이유를 일일이 설명하며 시작하지 않는다. 단지 그가 세상을 창조했다는 선포로 시작한다. 이것은 내 이해의 수준과 상식과 과학과 아무 상관이 없다. 윤리적으로 옳다, 그르다와도 상관없다.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이다. 이것은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내 삶의 권위가 누구에게 있는가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권위 아래 순종의 마음으로 성경을 보면 이전에 보이지 않던 말씀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은 후에 보니 지금까지 초막절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초막절은 영적인 의미로 ‘예수님의 재림’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그들은 지금까지 예수님 없이 살았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자기 힘으로 모든 것을 지키고, 견뎌야했다. 그러나, 이제 은혜를 받은 후에는 우리의 기대와 희망은 예수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전에도 말씀을 읽고, 암송했고, 가르쳤다. 하지만, 그것이 뭘 의미하는지 깨닫지 못했다. 단지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살아야 복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구원의 감격을 맛보고 나니까 선한 삶을 사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만이 우리의 희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이 구원, 그 이후에 나타나는 삶의 목적이요. 결론이다. 모든 성경의 구절에서 예수님을 발견해야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
2. 열매 맺게 하는 삶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절 행사가 다 끝난 후에도 다시 모여서 금식하고,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죄와 허물을 자복하며 예배를 하였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금식, 절교, 회개는 우리에게 무언가 아쉽거나, 안타까운 간절함이 생겼을 때에 한다. 그런데 이들은 은혜를 받고난 후에 이러한 것을 행한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신앙생활은 ‘순서’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구원 받기 위하여 하나님께 잘 보이는 삶은 신앙생활이 아니다. 참 신앙의 삶은 구원 받은 자이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자들이기에 거룩하고 순결한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참 신자이다.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하여 노력하는 자가 아니다. 성령의 열매는 맺히는 것이지, 내가 맺는 것이 아니다.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기 위하여 애를 쓰면 자기 자신에 대하여 절망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푹 잠기게 되면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사랑과 용서라는 것을 저절로 열매 맺게 해 주신다.
죄와 직접 대면하여 싸우지 말라. 우리는 죄의 유혹에서 이길 힘이 없는 자들이다. 신자는 죄를 안 짓는 것을 목표로 살지 않는다. 우리의 삶의 방향은 의와 거룩의 길로 적극적으로 행하여 걷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에게 성화는 선물로 자연스럽게 열매 맺게 될 것이다.
3. 주님께 맡기는 삶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초막절은 무슨 의미인가? 그 기원과 유래는 무엇인가? 그것은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의 역사를 기원으로 한다. 하나님이 그 때 풀 한포기, 물 한방울 없는 광야의 삶을 지켜 주신 것을 추억하는 절기이다.
그 초막절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강력하게 내리신 명령이 있다. 그것은 절대로 ‘노동을 하지 말라(레23:35)’는 것이다. 노동은 인간이 삶을 살아내기 위하여 가장 기본적인 행위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살 때에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광야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았는가? 단순하다. 하늘에서 만나가 내렸다. 자그마치 40년의 광야 생활에 매일 같이, 아침이면 어김없이 그들에게 내려서 그들은 그것으로 양식을 삼을 수 있었다.
초막절은 그런 것이다. 지금 느헤미야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초막절을 다시 시작하는 것은 우리의 삶이 우리의 상황과 여건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다시 상기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고 인도할 것을 믿고 나아가겠다는 것을 다시금 다짐하고, 내 삶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지형은 해발 900m 지역에 있다. 물을 그곳까지 끌어올 기술이 없다. 그렇기에 그들은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린 후에는 하늘을 바라 봐야했다. 하늘이 도와주어 비를 주지 않으면 그들은 살 수가 없다. 그 때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은 광야를 경험한 사람이다. 광야 40년의 세월 속에서 주리지도, 상하지도 않았던 경험을 한 사람은 근심하지 않는다. 염려하지 않는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늘이 비를 내려 우리를 살릴 것이다’라는 믿음으로 오늘의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말씀으로 산다. 하나님의 백성은 약속으로 산다. 우리는 그저 씨를 뿌리는 자이다. 내 삶에 내가 할 최선을 다했다면 우리의 시선을 하늘에 두자. 그 때에 우리를 살피시고 돌보시는 하나님께서 거룩한 비를 우리에게 흠뻑 쏟아 부어 주실 것이다.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후에 다시금 마음에 와 닿았던 말씀이 있는가? 나누어 보라.
3. 내게 있어서 성경은 도덕책이었는가? 아니면 은혜의 책인가? 은혜의 책이라면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책으로 읽혀지게 되었는가?
4. 나는 죄의 유혹이 올 때에 그것을 어떻게 이기는가? 나만의 비법은 무엇인가?
5. 전혀 희망이 보이지 않던 일이 내 의지와 노력과 상관없이 해결이 된 일이 있었는가?
6. 내가 오늘을 살아갈 힘이 되는 나만의 광야 생활은 무엇이었는가?
7. 나는 주님께 맡기는 삶을 살고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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