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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oo Yong Lee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라Ⅵ : 외부의 공격 느4:1~6절. 07.21.2019

느헤미야의 인도로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예루살렘 성벽은 빠르게 건축이 되고 있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문제가 발생한다. 그것은 예루살렘 주변의 이방인 산발럇과 도비야가 성벽 건축을 완성하지 못하도록 사람들을 선동하여 훼방을 놓기 시작한다.

이것은 우리의 삶 속의 영적인 원리에도 동일하게 적용이 된다. 우리 안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불붙기 시작하고, 사명감으로 무언가 사역을 하려 하면 이 마음을 죽이고, 지치게 하는 영적인 공격이 시작이 된다.

공동체 외부에서 일어나는 공격은 어떤 것이 있는가?

그들의 공격 방법은 크고, 두렵고, 모든 사람을 긴장시키는 방법으로 우리를 치고 들어오지 않는다. 그냥 단순한 방법이다. 그것은 비웃음이다(1절). 사람들이 내가 하는 일을 칭찬해 주지 않는다. 격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네가 백날 해 봐라. 네가 할 수 있나?’라며 비웃는 것이다. 산발랏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해 그들이 하는 사역이 불가능하다고 떠들며, 그들이 하는 일을 무가치하게 느끼게 만들어 버린다.

우리가 큰 맘을 먹고 우리의 삶과 공동체의 무너진 부분들을 재건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사탄이 제일 먼저 공격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우리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이다. 우리가 쌓아 놓은 행복한 감정과 느낌들은 일을 실수해서 무너지지 않는다. 대부분 말 때문에 무너진다. 한 마디의 말 때문에 삶 전체가 무너진다.

별것도 아닌 것 같은데 왜 사람들이 말에 무너지는가?

산발랏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비웃는데, 문제는 뭐냐면, 비웃는 말이 거의 대부분 사실이라는 것이다(2절). 차라리 완전히 말도 안되는 얘기를 하면, 이쪽에서도 비웃을 수 있는데 애석히도 다 맞는 말이다. 우리를 쓰러뜨리는 것은 황당한 얘기로 시작하지 않는다. 그 시작은 아니라고 부정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그런데 말투가 조롱이다. 그럼, 이 비방과 비웃음이 있을 때에 어떻게 이것을 이기고 일어설 수 있는가?

1. 인정(admit) 한다.

그들은 ‘분노’하며 ‘비웃’었다. 사람은 화내면서 비웃을 수 없다. 즉, 둘 중 하나는 가짜이다. 그렇기에 나를 비웃고 쓰러뜨리려고 하는 무리로부터 비방의 소리가 들리면, 그 말, 그 단어, 그 문장, 그 음성, 그 억양에 흔들리면 안 된다. 그 사람의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아무리 맞는 말이더라도 나를 흔들려는 의도가 보이면 그 수에 넘어가면 안 되고, 그 의도 자체가 별 의미가 없는 말이라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에 내가 흔들리면 더더욱 안 된다.

이럴 경우에 예수님은 어떻게 반응을 했는가? 누가복음 23장에 보면 무리들이 예수님을 비방할 때에 예수님은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단순히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네가 옳다’하고 얘기했다(눅23:3). 우리가 예수님의 모습에서 알 수 있는 교훈은, 우리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에 그들에게 일일이 반응하거나 찾아다니지 않고, 그냥 ‘그러거니~’하고 하나님께서 일하시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나의 약점에 대한 것을 솔직히 시인하여 나의 신앙의 그릇을 키워나가야 한다.

2. 하나님께 쏟아 놓으라

느헤미야는 그 쏟아지는 비방이 있을 때에 그들에게 나가서 조목 조목 따지지 않는다. 또한 어떤 비장한 마음을 갖고 복수심에 불타서 두고 보자는 생각을 하고 사역에 임하지 않는다. 그저 혼자 기도한다.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쏟아 놓는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 역시 많은 중요한 순간에 한적한 곳에 가서 혼자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특별하게 예수님의 혼자 하신 기도 중에 비방으로 인하여 죽게 되었을 때에 겟세마네에서 혼자 한 기도는 느헤미야가 기도했던 내용과 아주 흡사하다. 그것은 자신의 감정에 상당히 솔직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 앞에서 ‘이길 힘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지 않았다.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옮겨 달라’고 기도했다. 정말 이 십자가를 지고 싶지 않다고 마음에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표출했다. 느헤미야도 마찬가지이다. 비방을 당하고 공격을 당할 때에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구하는 기도를 하지 않았다.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을 못 참겠으니 그들의 악을 그들의 머리에 돌리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지 말라’고 자신의 감정을 하나님 앞에 그대로 다 표현했다.

이것은 우리의 무너진 부분들을 재건하는 데 아주 중요한 키이다. 사람들 앞에서 내 감정을 다 쏟아내지 못했는가? 잘한 것이다. 그것은 위선이 아니라 성숙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내 감정, 내 느낌, 내 생각을 그대로 다 표현하며 기도하라. 그럴 때에 하나님이 내 감정을 핸들하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에 대한 지혜와 위로를 주실 것이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유하지 못하다. 무언가에 항상 눌려있다. 감정에 눌려있고, 생각에 눌려있고, 죄책감에 눌려있다. 특별히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더더욱 기도가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런 나에게 질책하시고 내 기도에 응답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느헤미야처럼 진솔하게, 예수님처럼 솔직하게 기도하라. 하나님, 나 저들을 용서하지 못하겠다고, 나 이 짐이 무거우니까 제발 이 짐을 안 지고 갈 수 있게 해달라고 말해야 한다. 마음의 상처와 아픔은 묻어두면 해결이 되지 않는다. 묻지 말고 뽑아낼 수 있는 최선의 길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게 쏟아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통해서 내가 살 수 있는 문제의 해결과 재건할 수 있는 길을 내게 보여 주실 것이다.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내가 들었던 말 중에 가장 아픈 말이 있었는가. 털어 놓을 수 있는 선에서 나누어 보라

3. 그 말에서 벗어나 자유하게 되었는가?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가능하게 되었는가?

4. 하나님이 내 기도를 안 들어 주실 것 같은 생각이 든 적이 있었는가? 왜 그렇게 생각이 되었는가?

5. 내 기도는 감정에 솔직한 편인가?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도 감정을 절제하는 편인가? 그 이유는?

6. 나는 공격을 받으면 어떻게 반응하고 해결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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