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o Yong Lee

Aug 31, 20223 min

08.28.2022. 산상수훈Ⅲ(1) 세상 속의 소금과 빛. 마5:13~16절

예수님이 말씀하신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는 뜻은 유대인의 문화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 ‘세상(헬.게)’이라는 단어는 본래 ‘땅’이다. 그렇기에 ‘땅의 소금’이 원뜻이다. 왜 마태는 ‘세상’이 아닌 ‘땅’이라고 했을까.

● 땅(세상)의 의미

유대인들에게 땅은 하늘의 반대 개념이다. 하늘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이고, 땅은 어둠의 주관자가 지배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을 하셨을 때는 예수님과 함께 하는 그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 믿는 않는 저 땅이 곧 세상이다.

그렇기에 ‘세상의 소금’은 내가 예수를 전해야하는 그 곳, 가만히 두면 지옥에 갈 사람들이 있는 그 악한 곳에 가서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라는 의미이다. 지금 유대인의 입장에서의 세상, 악한 세상은 어디인가. 자신들 위에 군림하고 있는 로마이다. 또한 이들에게 빌붙어서 같은 민족인 유대 백성들을 괴롭히는 유대 지도층 사람들이다.

지금 예수님 앞에 있는 무리들은 이들로 인하여 억울하고, 서러운 일들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다. 당장 죽여도 속이 풀리지 않는 원수들인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 원수들에게 가서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것을 단순한 ‘세상’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말씀에 대한 실천을 내가 속해 있는 그 자리에서 소금의 역할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 수준을 넘어선 신자의 삶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공동체(교회)를 벗어나지 않고, 우리끼리 서로 희생하고, 격려하고, 참아내고, 양보하며 감동하고 즐거워한다면 아직 우리에게 요구되는 신자의 삶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다. 그저 소금통 안에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에서 소금이 되라, 소금이 되기 위하여 노력해라’라고 하지 않았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하셨다(13절). 그렇다. 소금은 우리가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를 믿는 순간 우리는 이미 소금이다. 빛 역시 마찬가지이다. 빛이 되기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이미 빛이다.(14절)

여기서 우리가 딜레마가 발생한다. 나는 교회에 다닌 지 오래됐는데 짠 맛이 없다. 내가 빛이라고 하는데 나는 누군가에게 빛이 되어 본 적이 없다. 그럼, ‘난 도대체 뭐냐’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차라리 소금이 되라, 소금이 되려고 노력하라고 하면 쉽다. 몸부림치며 착하게 살면 된다. 하지만, 이미 소금과 빛이라고 하는데 염도와 광도가 없으면 존재에 대한 고민과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예수님이 지적하신 것이 바로 이것이다. 현상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가하는 본질의 문제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네가 진정으로 신자인가 아닌가, 정말로 예수를 믿느냐는 질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내가 얼마나 짠가, 얼마나 큰 빛을 내기 위하여 사는 가에 중심을 두고 산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인생을 사는 것으로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려 한다. 내가 이렇게 꾸준히 살고 있는 한 난 당연히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좇아내고, 능력을 행한 자들에게 난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마7:23)

본질이 바뀌지 않으면, 내가 아무리 빛과 소금의 일을 행한다고 하더라도 예수님과 상관없는 자이다. 그럼, 본질이 바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단순하다. 예수를 참으로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으면 내 본질이 바뀐다. 이 본질이 바뀌면 소금과 빛은 자연스럽게 염도와 광도가 나온다. 물론, 사람마다 염도와 광도의 농도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소금과 빛이 드러난다. 감출 수 없다. 이것이 없으면 가짜이다.

● 산 위의 동네의 의미

율법의 산을 대표하는 산이 시내산이라면, 하나님의 은혜를 잘 표현한 산은 시온산이다. 시온산은 구약에서 주로 예루살렘 혹은 이스라엘을 백성을 대신하는 말로 쓰이곤 했다. 그렇기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산 위의 동네’는 예루살렘을 상징한다.

당시의 예루살렘 성은 전혀 긍정적인 이미지가 아니었다. 종교 지도자들의 사악함과 악한 만행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곳이 바로 예루살렘이다. 이 어둡고 절망스러운 곳에 한 줄기의 빛이 들어온다. 예로부터 이 빛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이 회복될 것을 예언했었다.(사2:2.3)

이 빛은 뭔가. 이 빛은 신자들을 의미한다. 빛인 신자들이 어두운 곳인 예루살렘은 회복시킬 것이다. 그럼 이 신자들에게 발현되는 빛의 근원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너희의 빛’이 비치게 하라고 하셨다. 즉, 너희가 소유하고, 가지고 있는 빛이다. 이 빛이 내 안에서 나오기에 내가 빛으로 살 수 있는 것이다.

신자가 소유한 빛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행할 착한 일은 도덕적, 윤리적인 선행이라든가, 누군가를 위하여 봉사와 헌신을 하는 것을 말함이 아니다. 그것은 나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요. 나의 주님이심을 드러내는 삶을 의미한다.

성경은 예수님이 행한 그 복음 전파의 일을 착한 일이라 한다.(행10:38) 그것은 예수님에게서 비롯되고, 그것에 기인해서 나오는 그리스도의 삶을 의미한다. 이 예수의 착한 일이 오늘의 우리에게서 재현이 되는 것. 예수님의 삶을 본을 삼아 살며 그 분이 그리스도임을 나타내 보이는 것. 그것을 두고 소금과 빛의 삶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 신자에게 있어서 최고의 찬사는 예수를 닮았다는 말일 것이다. 그 예수를 닮는 길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행하는 도덕적 윤리적 기준의 착하고 선한 행동으로는 예수를 닮을 수 없다. 그 단순한 착한 행위를 행하면 사람들은 나를 의인으로 본다. 하지만, 소금과 빛의 삶은 나를 통하여 예수가 발견되는 것이다.

예수를 닮는 유일한 길은 그 분을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는 그 믿음을 근거로 그 분의 말씀에 따라 사는 삶뿐이다. 그 십자가 헌신으로 세상을 살 때에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소금과 빛으로 사는 삶이고, 그 때에 비로소 나의 모습을 보고 세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내게 소금과 빛의 염도와 광고가 있는가. 있다면 어느 정도라 생각하는가.

3. ‘세상의 소금’이 아니라 ‘땅의 소금’인 것을 알게 된 후의 나의 변화는 무엇인가

4. 내가 정말로 닮고 싶은 인물이 있는가. 왜 그 분을 닮고 싶은가

5.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나의 방법은 무엇인가

6. 내 안에 복음이 꽃 피우기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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